제품 매니저와 사업

작년부터 개발자가 아닌 제품 매니저로서 사업화나 고객 개발 같은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 이런저런 책이나 글을 많이 읽으면서 담당 제품의 사업화에 적용해 보려고 노력 중인데요, 얼마 전 DeepScan 서비스를 오픈하면서 Slack CEO의 글과 권도균 님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자포스의 <딜리버링 해피니스> 등을 읽으며 나름 사업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팀원들에게 공유했습니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겠지만, 가치 있는 제품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과 공감하고자 블로그에도 옮겨 적습니다.

안녕하세요!
DeepScan 서비스가 곧 외부에 오픈됩니다.
마케팅도 하지 않는 미미한 알파 오픈이지만 그래도 우리 팀의 첫 오픈이기도 한 만큼 서비스와 사업 관련해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각자의 일이 어떻게 우리 사업에 들어맞을지 이해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저도 왜 이 일을 하는지 정리하고 싶어서요.
조금 길지만, 끝까지 읽어 보시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제게 와서 질문하세요!

사업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제게 묻더군요.
“DeepScan은 어떻게 개발하게 된 건가요?”
“아 그게 뭐 무려 KAIST에서 그 어려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전공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여차저차해서.. (뭘 그런 걸 물어봐) 어쨌건 우리 제품 기능이 말이에요…”

그런데 나중에 곰곰 생각해 보니 이 스토리에는 우리가 가진 기술은 있는데 사용자는 없더라고요.
GitHub(사무실 임대할 돈이 없어 자신들의 분산 작업을 위해 개발)나 Slack(게임 개발 중 자신들의 팀 협업을 위해 개발) 같이 우리가 불편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데이지(고객에게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주다가 시장 필요를 발견하고 시각화 솔루션을 개발)처럼 현장의 고객이 어떤 불편을 겪는 것을 보고 만들기 시작한 것도 아니니까요.

이것을 스타트업 비즈니스에서는 제품-시장 궁합(product-market fit)이라고 하는데요, 제품의 가치(value proposition)와 고객의 필요와 문제점은 항상 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루션’인 것이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어쩌면 우리 DeepScan은 제품-시장 궁합이 맞는 즉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고객이 가진 구체적인 문제를 풀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속의 버킷 리스트를 지우는 일은 아니었을까요?

또 사업이란 뭔가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되죠. 세계 최고의 엔진, 웹 사이트의 포괄적인 문제 해결, 아직 아무도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한 근사한 ‘무엇’을 만드는 일.
하지만 사실 사업은 지루하고 쫀쫀하며, 트렌디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것 같습니다. 좀 허접하더라도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우리 제품을 기꺼이 사용할 사용자를 찾고, 현실의 첫 고객을 만족시키고, 첫 매출을 벌고 AWS 운영비를 충당하는.
그런데 이게 저 거창한 일보다 더 어렵죠. 세상에 없던 것을 우리 생각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용자의 문제를 진짜로 해결해 주고 만족시켜야 하는 일이니까요.

결국 제가 생각하는 사업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서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 그것입니다.

작은 곳에 집중하기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사업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누구의 문제를 남들보다 어떻게 더 잘 해결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풀고자 하는 것은 JavaScript 코드의 품질 향상이라는 문제입니다. JavaScript를 많이 사용하는 개발자들, ESLint를 충실히 사용하는 개발자들, 전통적인 코드 품질 관리를 해 왔던 관리자들을 위해서요.
코드의 품질 관리 영역은 이미 ESLint나 SonarQube가 존재하고 있어서 누구는 무료 툴만 있는 시장이라 하고, 누구는 이미 경쟁이 있는 시장이라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Code Climate이 5년 이상 사업을 하고 있고, 500억 이상의 투자(SonarSource의 작년 투자 유치 금액)가 이뤄지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아 물론 이들은 JavaScript만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코드 품질 관리 시장에서 JavaScript 전문 코드 인스펙션 도구라는 우리의 터를 한 뼘이라도 잡고(조금 어려운 말로 ‘차별화를 통해 경쟁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장을 가져라’라고 하더군요) 그 터를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그 작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맞는 제품이면서, 까다로운 그들이 주변에 얘기할 만큼 좋아야죠. 그들이 만족하지 않으면 그다음의 터는 없을 테니까요.

또, 얼핏 생각하면 코드 품질 외에 브라우저 호환성이나 보안 취약점을 추가로 지원해 주면 좋겠죠?
하지만 전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저 부분을 추가한다고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기능에 더 경쟁력이 생기지도 않고, 실제로 보안 취약점 체크가 필요한 사용자는 보안 취약점 체크가 주력인 다른 제품을 쓸 것이거든요. JavaScript의 코드 품질이 주력이면 거기에 경쟁력 있는 제품이 되기 위해서만 집중해서 노력하면 됩니다. 고객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두 가지의 핵심 기능 때문에 그 서비스를 사용하니까요.
‘만 명이 좋아하는 서비스보다 백 명이 사랑하는 서비스’가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이유도 위와 같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요즘 React 지원에 꽂혀 있는데, 많은 사람이 좋아할 일반적인 검증 규칙보다 React를 사용하는 작은(그러나 성장하고 있는) 그룹이 열광할 만한 구체적인 검증 규칙이 충성도 높은 사용자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GitHub가 Rails 커뮤니티에서 성장했듯이 그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부터 사업이 시작되고 주변 사용자가 끌어당겨 지면서 사업이 크는 거죠, 결국 사업은 고객 만족이니까요.

아 누가 자꾸 우리 제품이 Fortify보다 좋냐고 물어본다고요? 앞으로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DeepScan은 보안 취약점은 다루지 않습니다. 우리가 집중하는 영역은 JavaScript 코드의 품질 관리입니다”.

사용자 관점에서 생각하고 실행하기

요즘 어디 가서 오픈하겠다고 하면 다들 걱정해 줍니다. 서버는 있는지, 동접은 어떻게 처리할 건지, 마케팅은 어떻게 할건지. 힘듭니다..
마케팅. 필요하죠. 베타에서는 소셜 마케팅이든 언론 인터뷰든 하겠고요.

그런데 이런 돈 들여서 하는 마케팅보다 더 중요한(더구나 모두가 할 수 있는) 시작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작게라도 하나씩 뭔가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알파는 주변 지인한테 홍보하는 식으로 진행이 될 것인데,
소규모의 사람이라도 서비스를 방문한다는 것이고 그들이 사용할 때 뭔가 걸리는 것이 없도록 계속 다듬어서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바로 마케팅이고 고객 서비스가 됩니다.

분석기를 개발한다면 메시지가 어떻게 사용자에게 읽힐까, 개발자의 코드 품질 향상을 도와주기 위해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생각해야 하고 사이트를 개발한다면 사용자가 매끄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해서 적용하는 일이 그 예가 될 겁니다.
뭔가 뒤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분석기라 해도 여러분이 지금 IDE에서 입력하는 바로 그 메시지가 사용자한테 보여지고, 그게 그냥 우리 서비스 자체입니다.

지금 newrelic.com에 가서 로고에 대고 오른쪽 클릭을 해 보세요. ‘Just trying to be helpful.’ 전 참 사려 깊게 느껴지더라고요.
고객 서비스가 admin@deepscan.io로 어떤 응대를 하는 것만이 아닌 여러분의 일상적인 개발이 포함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하던 일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작게라도 뭔가를 개선해서 그렇게 작은 변화들이 모이면 올해 말에는 더 향상된 서비스가 되어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우리 같은 조직에서 조금 더 필요한 역량은 실행력과 속도인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에 틀린 단어를 발견했는데 며칠 동안 방치되거나 사용자 혹은 동료의 좋은 제안이 별다른 결과 없이 무시되는 것은 좋지 않겠죠. 분석기를 개발한다면 끝에 ‘.’이 빠진 메시지를 발견했을 때 누군가의 일감으로 일이 진행되길 기다리지 않고 바로 고치는 것. 사이트를 개발한다면 홈페이지의 틀린 단어를 바로 고치거나 알리는 것이 작은 예가 될 것 같네요, 아 쫀쫀해.

다른 누군가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우리 서비스이기 때문에 사용자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아서 신나게 일하고, 사용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스스로 못 참아서 개선하고, 아이디어는 말 대신 빠르게 프로토타이핑해서 그 결과로 동료들과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집의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줄 서비스가 되도록요. 참, 아이들이 사용하게는 하지 마세요. 우리 서비스 약관에 13세 이상만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니까요!

끈질기게 나아가기

알파이긴 하지만 어쨌건 외부에 오픈되는 것이니 뭔가 사업이 진행되는 것 같죠?

하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거고 지금은 그냥 사업 준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버를 임대하고 서비스를 오픈하고 사용자를 모집하는 이런 과정들이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정작 사업은 우리 서비스에 만족하는 한 명의 고객이 생기거나 목표로 하는 고객과 시장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진짜 시작일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 존재를 소박하게 알리고 우리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문제를 가진 고객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므로 사람이 안 모인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도 없이 시범 경기처럼 가볍게 하지만 진지하게 가죠.

솔직히 내년에 이 사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연말에 사업 평가도 있겠지만 올 한 해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동요 없이 일하시면 좋겠고요.
팀의 비전, 사명 이런 것들이 어디 위키에 있을 수도 있는데 사실 팀의 비전이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 팀이 어디에 인력과 시간을 집중하는지 보면 되죠. 그런 면에서 팀 인력이 적은 숫자도 아니고, 우리 팀이 진짜로 이 사업을 추구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저는 처음에 사업이라는 게 뭔가 거창하게 느껴져서, 정기적으로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야망이나 더 큰 계획을 준비하고 빵빵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작게 성공하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고객이라도 만족시키고 가치를 인정받고 그렇게 작은 성공을 쌓아가면서 지속하다 보면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요.

한 걸음씩,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향해.

마무리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코드 품질 관리 사업자들이 여럿 있지만 비슷해 보여도 같은 사업은 없습니다. Code Climate은 다양한 언어의 linter 결과를 잘 관리해서 보여주는 브로커이고, bitHound는 npm 패키지의 취약점 체크로 사업을 하고 있죠.
DeepScan은 ‘최소한의 오탐율’로 ‘JavaScript 코드 에러와 오류 패턴을 검출’하는 데 특화된 서비스입니다.
차별화되어 있지만 반대로 참고할만한 성공 사례들이 별로 없고 따라서 서비스를 하면서 사용자의 반응과 요구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를 바탕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사업 평가에서 회원 수나 프로젝트 수 등을 따지겠지만, 사실 이런 것이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 사업의 목표(본질)는 JavaScript 개발자들이 맞춤법 검사기처럼 그냥 상시적으로 돌릴 만큼 JavaScript 코드 품질 향상에 도움을 주는 도구이자 서비스인 것이고, 회원 수는 그냥 그에 따른 결과이겠죠. 마케팅을 통해 일시적으로 ‘성장’할 수는 있겠지만, 이 ‘본질’이 추구되지 않으면 결국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치 있는 서비스를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집중해서 잘 해보자는 거였는데, 이런저런 생각들과 여기저기 읽은 글들이 얽혀 쓸데없이 길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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